무제
"한니발 메잘레루!…한니발!"
누군가 외쳤다. 그 누군가를 찾는 듯한 간절한 목소리가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들렸다.
분명, '한니발 메잘레루'라는 어처구니 없는- 아랍 권에서도 사용되지 않을 듯한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내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간절히 외치는 사람의 이름일 리도 없었다. 저렇게 애타게 부르는 것을 보면 아마 '신'의 이름이라도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럴 리도 없었다.
누가 대체 신을 저렇게 건방지게 부르겠는가. 경어도 붙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야, 꿈이었나."
누워서 멍하니 그 꿈을 생각해보니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니발 메잘레루'? 대체 그는 누구일까, 그렇게 애타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도 상당히 좋은 사람일거란 생각이 나지막히 들었다.
내가 채 침대에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딸깍' 하고 문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초록색 에이프럴을 두르고 있는 건, 엄마였다. 가벼운 식사거리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음식까지 방으로 날라주는 것을 보면 아마 아침인 듯 했다.
"민우야, 맛있는 토스트란다."
엄마가 나에게 토스트를 하나 내밀었다. 막 일어난 참이라 식욕이 그다지 있진 않았지만, 저번에 음식을 거부했다가 생긴 사건 - 아마 엄마 파마머리가 뿔로 변했던 기억이 난다. 완전히 집안이 파탄 났던가? 그건 내가 태어난 이후로 처음 겪어보는 대 재앙이었다. -을 생각하면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이 있다면, 엄마의 요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평을 받는 맛있는 요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욕이 없을 때 빼고는 거부할 마음이 별로 생기지가 않았다. 아마도 이건 '신'이 나에게 준 '행운'이 아닐까?
푹신한 이불을 토스트를 먹기 전에 정리하고는, 엄마가 준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약속한듯이 항상 하는 리액션 "엄마 참 맛있어!" 다음 엄지를 엄마한테 들어주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엄마의 요리는 이런 리액션을 취하고도 남을 정도로 맛있었다. 오늘은 햄, 치즈, 계란이 위주로 담긴 동물성 지방이 가득한 토스트였다. 엄마는 만족한 듯이 방을 떠나갔고. 난 나머지 하나의 토스트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무사히 먹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었다. 근데 그게 깨지는 소리라기 보단 '아이가 우는 날카로운 소리'라는 느낌이 더 올바르다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우선 1층에 있는 사람은 아까 내려간 엄마밖에 없을 테고 - 아빠는 돌아가신지 오래였다. - 우선 엄마라면 괜찮을 것이였다. 몸 하난 튼튼하기로 유명한 엄마니까. 하지만 난 우선 달팽이 껍질처럼 꼬인 계단을 차분히 내려갔다. 아무리 엄마가 건강하고, 튼튼하고 그리고 세신분이라고 해도, 그런 특이한 소리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계단을 내려가니 보이는 1층, 하지만 그 1층은 내가 알고 있던 우리 집의 평상시 모습과는 굉장히 달랐다. 아니 이건 완전히 틀려졌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뫼비우스의 띠'? 정말로 괴기한 구조였다. 특이한 게 있다면 우리 집 1층에 비치되어 있던 물건이 전부다 그 뫼비우스의 띠 위에 올려져 있었다는 것, 여긴 분명히 우리 집 1층이 맞았다. 게다가 문까지 있었다. 이 구조를 봐서는 어디로 통할지 모르는 문까지…. 나는 우선 엄마가 어떻게 되진 않았을까? 하고 이 띠의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지만, 엄마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찾을 수 있었던 건 문 앞에 떨어져 있는 엄마의 초록색 에이프럴 뿐. 아마 문으로 나간게 아닐까 싶다. 아아- 짜증이 난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거 장난이지? 그렇지? 꿈이지? 난 꿈인지 의심이 되어 내 뺨을 강하게 꼬집어보았다. 너무 과하게 꼬집었는지 통증이 뺨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이렇게 현실적인 고통을 제공하는 꿈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게 나라는 존재의 꿈이라면, 이런 꿈을 구축한 나의 뇌한테도 상을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띠의 바닥은 내가 걸어다닐 정도로 딱딱했지만, 고의적으로 자극을 줄 경우 -발로 찬다든지, 손으로 꾸욱 누른다던지.- 하는 경우에는 마치 젤리처럼 물컹하면서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가 손가락을 때면 다시 패인 부분이 빠르게 원래대로 복원 되었다.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한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몇 분 안에 -사실 내가 자고 있던 사이에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배제해두자. - 집의 구조가 바뀌기가 쉽지가 않을 뿐더러, 이런 구조를 유지 할 수 있는 -계단과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 띠 이외의 공간은 마치 아 공간 같았다.-기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엄마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이전의 우리 집 밖이 아닐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야한다. 저 '문'을 열고 가야 한단 소리였다. 근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선 저 문을 열면 안 될 것처럼 경고신호를 보내왔다. 약간의 메슥거림, 그것은 아마 이 정체불명의 구조에서, 혹은 내 마음상태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나는 과연 저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데에서 망설였다. '엄마' 라는 존재를 찾으려면, 밖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가. 내 상태는, 어린 아이처럼 망설이며 좀처럼 걸음을 때지 않고 있지 않는가. 계단은 남아있었다. 2층에 올라가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올라가!'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고, 지금 올라가면, 아니, 지금 올라가지 않으면 마치 죽어버릴 것 같았다.
젠장, 오늘은 꿈부터 뒤숭숭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느껴졌다. 호흡이 떨려왔다. 나는 문의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에 짜릿짜릿한 느낌이 느껴졌다. 경고였다. 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 하지만 난 어떻게 인진 모르겠지만 문을 열었다. 환한 빛이 나를 덮쳐왔다. 내 눈은 잠시 동안 그 빛에 의해서 기능을 할 수가 없었다. 난 그렇게 칙칙한 곳에서 밝은 세계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푸른 하늘과 몇 명의 사람이었다. 키가 작은 트윈 테일의 어린애와, 펌이 어느새 풀려버린 엄마. 그리고 두 명의 키 큰 사람 이였다. 트윈 테일의 어린아이는 마치 자신이 '어른'이라도 된다는 듯이 정장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각각 색이 틀렸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렀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데에 비해 내 마음은 혼돈 그 자체였다. 마치 내가 오면 안 될 곳에 온 것처럼.
"젊은이, 진정하시오. 여긴 그다지 위험한 곳이 아니외다."
하안 정장을 입은 거장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날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왜 날 그렇게 서글프게 바라보는거야? 난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음이 옥죄여왔다.
"아리엘, 또 사고를 쳤네. 저 애도 여기 온 이상 '신'이 될 수 밖에 없어."
트윈 테일의 어린애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를 바라보며 느낀 것이 엄마가 꽤 젊어져 있었다는 점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고, 저건 무슨 말인지…. 밖에 나오고 마치 내가 갓난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누구인진 몰라도, 우선 이건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헤에? 그럼 저 '한니발'의 후손을 누가 이렇게 보내려 했단 말이야? 간 크네. 하지만, 이 마법, 아니, 이 신기를 다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단 말이야!"
트윈 테일의 꼬맹이가 건방지게 말을 뱉었다. 평소라면 내가 불같이 화냈어야하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안 되었다.
"단 한명 있어요."
"그 녀석은 이미 소멸 된지 오래야!"
엄마의 말에 꼬맹이가 소릴 질렀다. 난 정말 갓난아이 정도로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이정도로 무능했었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 그 거장들이 나를 불렀다. 이쪽으로 따라오라는 듯, 제스쳐를 취했기에 나는 엄마와 꼬맹이를 놔두고선 그들을 따라갔다.
아까의 장소, 수려하게 펼쳐진 꽃밭과는 다르게 이 곳은 수수했다. 작은 개나리들이 곳곳에 피어있는 정도다. 하지만 수수함과는 다르게 꽃내음이 내 코를 즐겁게 만들었다. 기분이 한결 가라앉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장은 의자를 세 개정도 가져왔다. 등받이가 없는 평범한 의자였다.
"우선 앉으시오."
하얀 정장의 거장이 말을 꺼냈다. 옆에 검은 정장을 입은 거인은 아까부터 불만이 가득 차버려서 휴지통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의 표정을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
"여기는 신들의 정원이라는 곳이외다. 아주 훌륭한 곳이지만 모든 세계 중 가당 지독한 곳이기도 하외다."
거장이 나에게 하나의 작은 책자를 건냈다. -신들의 정원 안내도 초급 신용- 이라고 적힌 책자였다. 펼쳐보니 지도와 이 곳의 존재 목적 - 인간계를 행복하게 한다는- 그리고 이 책자의 존재 목적까지도 나와 있었다. 대충 읽어보니 ‘내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그 꼬맹이의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요 인물 란을 읽어보니, 아마 내 앞에 있는 하얀 정장의 신은 ‘고타마 싯타르타’ 불교의 창시자인 인도의 왕자인 듯싶다.
“당신께서 주신 책자를 읽어보니까 어느 정도 알 것 같군요.”
내가 말했다. 그는 좋다며 막대기 하나를 주었다. 책자에서 본 바로는 ‘초급 신의 권력의 상징물’ 이라고 본 것 같다. 색깔에 따라 능력이 다르다는데, 내 막대기의 색은 무언가 조금 달랐다. 아니 색이 없었다. 무색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거장의 몸이 꿈틀거렸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확실히, 그는 나보다 여기 온지 오래 되었을 테니까.
“아까 책을 읽어보았어도, 이게 무엇을 뜻하시는지 모르실거외다.”
이제 깨닫고 보니 석가모니께서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 투명한 색은 ‘순수’를 뜻합니다.”
검은 양복의 거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이야기할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 아까까지 존재했던 ‘적의’는 언제 있었냐는 듯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당신이 이 막대기를 가질 만큼 순수한 마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석가모니님께서 선택한 분이시니까. 잘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색의 능력은 ‘만능’입니다 무엇이든 가능하죠.”
“만능?”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다른 색들처럼 자격이 되면 저절로 다음 등급의 상징물로 변화할겁니다. 그때 석가모니님을 찾아가십시오. 저는 석가모니님과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검은 정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석가모니와 함께 떠나갔다. 저게 3대 세력 중 한명인 불교의 석가모니. 이 ‘신들의 정원’을 지킨다는 방어대장. 그리고 나머지는 마호메트와 예수 그리스도 이 세 신은 다른 신들을 감독하고 ‘신들의 정원’을 지킨다고 한다. 그렇게 석가모니를 전송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트윈 테일의 꼬맹이와 엄마가 나타났다.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가.
“민우야!”
엄마가 외쳤다. 매일 보아도 반가운 얼굴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나는 엄마에게로 걸어갔다. 옆에 있는 트윈 테일 꼬맹이는 퉁명스럽게 양 팔을 꼬았다. 엄마가 여기 있다는 건 엄마도 실수로 이쪽으로 왔다거나 신이라는 말인데, 아까의 대화로 봐서는 신인 것 같고 여기 이 꼬맹이는 적어도 엄마와 동급인 신인가?
“엄마.”
엄마가 평소같이 내 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곤 당신의 그 포근한 품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마치 날 태어난 아기처럼 여기는 듯, 당신의 다정한 손길로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학교를 다닌 뒤로는 나나 엄마나 바빠서 이렇게 포근하게 안길 수 없었는데 이게 얼마만인가. 하지만 그런 모습을 꼬맹이는 사나운 늑대의 눈을 하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무엇이 불만인걸까 마치 젖을 먹지 못한 아이처럼 뾰루퉁한 눈을 한 체 꼬맹이는 해질녘의 노을 너머로 사라졌다.
“다행이다.”
엄마는 내 등에서 손을 뗐다. 난 엄마에게 좀 더 안아주라고 조르고 싶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지만 난 그럴 순 없었다. 이제야 와서 이렇게 어리광 부려봤자 좋은게 없을게 분명했으니까.
그것보다는, 궁금한 점이 메일함 속 쌓인 스팸메일처럼 쌓여있었다. 난 우선 그것부터 알아내고 싶었다.
“엄마는 대체 무엇인가요? 사람? 혹은 신?”
생각보다 행동이 더욱 빨랐다. 누군가 본다면 ‘에잉, 무례한 것’ 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나의 경솔함을 잠시 한탄하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표정이 좋지는 않은, 마치 무표정의 가면이라도 씌운 모습이었다.
“말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않아도 되요. 대신 나중에 꼭 알려주셔야 해요.”
나의 조심스런 말에 엄마는 삐걱거리는 듯 하며 나무인형처럼 천천히, 그리고 잘 살피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나의 궁금증은 빠른 시일 내에 풀릴 것 같진 않았다. 아마 평생 이 궁금증을 어둠에 묻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 내 팔 위로 하얀 비둘기- 아니 하얀 매라고 정정한다. - 가 갑작스럽게 날아들었다. 이 새는 다른 매들과 다르게 하얀 깃털을 지니고 있었기에 내가 비둘기라고 착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매는 다리는 단단한 막대처럼 가늘면서도 길고 단단했다. 부리는 여느 것엔 잘 부러지지 않아 보인다.
매의 다리를 자세히 보니 종이쪽지 같은 것이 조밀하게 말려 묶여있다. 아무래도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도 되나보다.
[당신의 숙소는 현재 위치에서 쭉 가면 나오는 작은 나무집입니다. 그리고 그 아무나 쪼아버릴 것 같은 당신을 닮은 새는 앞으로 당신의 보좌, 그리고 전령일을 할 새이니 이름을 지어 주시고 앞으로 부디 간수 잘 하시길.]
서명에 누군지 나타나지 않았지만, 종이에 쓰인 글이 가시가 뾰족하게 돋힌 것으로 보아 이것은 아마 분명 그 검은색 정장의 쪽지다. 으득, 하고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도대체 왜 여기나 저기나 이유 없이 까칠하게 구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데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유라도 말해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난 잠시 후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날 싫어하는 사람’을 생각 해봤자 짜증만 치 솟을게 뻔했고, 생각을 그만하지 않는다면 아마 난 엄마 앞에서 흉한 모습을 보일지도 몰랐다. 그러긴 싫었다.
“가야겠지 아들?”
엄마가 잠시 동안의 이별을 고하는, 갑자기 엄마와 나 사이에 벽이라도 만드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말을 했다. 나도 고개를 마지못해 끄덕였다. 아빠가 동라가신 이후로 엄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고, 학교 가는 시간 외에 엄마와 떨어져 있고 싶진 않았었다. 나의 고갯짓에는 어쩔 수 없이 슬픔이 묻어나왔다.
“그럼 아들, 누가 먼저 서로 숙소로 돌아가는지 내기할까?”
“아, 응.”
“그럼 시작하고 외치면 서로 뛰어가는 거다!”
엄마의 갑작스럽고 대책 없는 내기에 동의를 한 내가 갑자기 바보같이 느껴졌다. 어느새 엄마의 페이스에 말려, 이런 내기를 해버리다니, 하지만 이런 내기에서 가장 불타오르는 것이 바로 나 아니던가. 이런 건 이겨줘야 한단 생각으로 엄마의 ‘시작!’이라는 외침소리에 맞춰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엄마는 어디까지 갔을까? 하고 돌아보자 엄마는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의 이 지지 않으려는 성격을 이용한 게 틀림없으리라. 당했다는 생각으로 조그마하게 웃으며 더욱 속도를 내서 숙소를 향해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자, 과연 그의 말대로 작은 나무집이 나타났다. 마치 버섯처럼 생긴 통나무집이었다. 집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집의 내부도 하얗게 반짝였다. 아니면 내가 오기 전에 누군가 청소해 놓은 걸까. 이 집에 놓인 물건 하나하나가 자신을 봐 달라며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노래를 부리고 있었다.
집에 온 것을 환영해요.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집에,
이런 집에 온 것은 행운이에요!
노래를 부르는 집은 여기밖에 없거든요.
나는 순간적으로 망했다는 생각이 - 밤에 노래를 부르면 못 잘 것이 아닌가! -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선가 말에 가시가 돋혀 버린 한 신이 미친 듯이, 아니 속으로 정말 웃기게 웃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따스한 집이 있다는 게 어딘가. 아직도 마음의 집을 찾지 못하며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나마도 다행이고, 나에게는 축복인가.
밤이 늦었다. 모든 생명체들이 눈을 감고 내일을 고대해야 할 시간. 모든 것이 다시 시작 될 나에게도, 기존의 모든 신들도 잠시 휴식을 가져야 할 시간.
평소처럼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엄마의 ‘잘 자렴.’ 이란 따스한 한마디만 있었다면 완벽한 일상이었을텐데. 내 마음을 일상을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아쉬웠었나보다. 아우성을 쳤다. 아무도 모르는 아우성을.
아침이 기어코 오고 말았다. 이 집은 당연하다는 듯이 7시 정각이 되자 나를 온갖 것으로 깨우기 시작했으니, 침대에서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요. 물벼락과 칫솔이 나의 잠을 홀랑 다 달아나게 했던 것이었다. 참 까탈스러운 집이였다.
밤에 푹 휴식을 취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돼서 이 집을 홀랑 다 태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노릇, 하지만 잠 잘 때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집에 참 고마운 점이었다. 그렇게 내가 물벼락을 맞은 지 얼마 안 되어 마치 한 마리 길짐승의 모습이었을 때 ‘똑똑’하고 아침 이른 시간부터 누가 나의 쉼터의 문을 두드렸다. 집은 나를 골탕 먹이고 싶었는지 문을 열었고. 나는 그 꼬락서니를 아침부터 다 보여주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의 검은 정장, 그였다. 나는 순간 그 말을 회피하듯 휘익 고개를 돌렸다. 하얀 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지었다. - 가 내 머리 위로 올라와 앉았다. 아침이라 까치집처럼 되어있는 내 머리가 자신의 둥지라도 된다는 듯이.
“이름은…….”
“지었어요. 화태라고!”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머릿속에 있던 이름 중 아무거나 내 뱉었다. 그는 마치 X이라도 씹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당신이란 사람은 참 그와 닮았군요.”
“그가 누군데요?”
내 물음에 잠시 그가 놀라듯 자세를 고쳐 세웠다. 물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도 되나보지?
“아닙니다. 제가 잠시 실언을 했군요.”
역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건 바보라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끼리라.
나는 슬며시 일어나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석가모니님 께서 하실 말이 있다 하십니다.’ 이었다. 여전히 가시돋힌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