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안 눈이 왔다.
하지만 그 눈은 비단만큼 곱지는 못했다.
딱딱한 소리가 밟혀왔다.
백옥이 커다랗게 박힌 왕관이 빛을 발해왔다. 그 것을 쓰고있는 그녀만큼 빛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흰 머리를 잠깐 가지런히 정리해놓고는,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행차했다.
고운 머리가 바람결에 흔들렸다. 하지만 아들은 그녀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음을 언질 할 권리조차 없었다.
그는 남자였으니까.
이 시대의 남자들은, 언제부터인지 당연하다는 듯 노예처럼 살아왔었다.
여왕의 아들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고. 여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평소처럼, 그게 전부였다.
"마마."
"무엇이냐."
"소인, 이 정경을 시로 표현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네 시도 오랜만이구나 해 보아라."
아들은 의외였는지 흠칫 떨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던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할 때였다.
"눈이 오면 하늘이 눈이 부신다.
하늘의 맑고 푸름은 언제까지 이어질려나.
맑고 개인 날만 있는게 아니함은 알고있을까."
"무슨 뜻이냐."
"저는 그저 앞에 펼쳐져 있는 하늘에 눈이 부셨을 뿐입니다."
여왕은 지팡이를 하늘에 쳐 들었다. 지팡이에 달려있는 보석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게 아들의 눈을 더 부시게 만들었다. 아들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아들의 매서운 눈가가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드러났다.
"하늘은 앞으로도 푸를 것이다. 오늘도, 모래도."
"…."
여왕이 집사를 불러 아들을 방으로 데려가게 만들었다.
새하얀 눈밭에 남아있는 사람은 여왕 혼자였다…, 아니 과연 여왕은 혼자 남은 것일까.
집사에게 끌려가듯 방에 되돌아온 왕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적어온 일기를 폈다.
표지가 나무로 된 딱딱한 일기장, 오래되었는지 나무의 겉 표면은 부드럽지 못했다.
왕자가 맑은 목소리로 꺌꺌거리면, 그 웃음까지 여왕은 다 적어주었다.
뭐가 그리도 좋았는지 왕자는 어머니가 쓰고나서 돌려준 그 일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다른 신하들에게 자랑하기 일쑤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이 뭐가 불편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왕자의 방은 왕실의 다른 방과 달리 나무로만 이루어진 허름한 방이였다.
시녀와 같은 격의 대우를 받는 왕자, 그의 방의 나무 가구는 오래갈 수록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보단, 오히려 초라함을 더해갔었다.
"아아, 나에겐 남은 것이 없구나."
애통했다.
왕자의 가슴에 홀로 남겨진 비애는 왕자의 생각을 점점 비틀리게 만들었다.
그 생각은 꼬이고 꼬여서, 왕자의 심장을 향해 모서리를 드러냈다. 마치 유리조각처럼.
친구들도 점점 떠나가고 왕자는 홀로, 그리고 친구들은 모조리 여자들의 하인으로….
여자와 남자, 무엇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길래 서로 차별하고, 차별받는 것일까.
왕자는 그것이 슬펐다. 생각 할 수록 한 없이 서러워지는 깨져버린 조각들이 왕자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